기원전 197년, 마케도니아의 침략으로 인해 그리스의 지원 요청을 받은 로마는 그리스 북부의 테살리아 지방에서 마케도니아와의 전투에서 승리하게 되고 마케도니아와 강화를 맺게 된다. 이 무렵 처음으로 '팍스 로마나'(로마의 지배에 의한 평화) 사상이 생겨났다. 이 평화는 오래 가지 못했다. 마케도니아의 강화에 불만을 품고 있던, 그리스 중부의 아이톨리아인은 시리아의 안티오코스 왕에게 개입 요청을 한다. 카르타고에서 시리아와의 내통을 이유로 쫓겨난 한니발로 시리아에 있었다. 로마는 외교를 통해 해결하기 위해 시리아로 사절을 보내지만, 크게 진전 없이 돌아온다.




기원전 191년, 시리아의왕 안티오코스가 헬레스폰토스 해협 (現 다스다넬스 해협) 을 건너 아이톨리아 인과 합류한다. 하지만, 테르모필레에서 패해 소아시아로 도망치게 된다. 로마에서는 끝장을 보기 위해 시리아로 향한다. 2번의 해전에서 모두 승리한 로마는 에게 해의 제해권을 장악한다. 상륙한 로마 군이 남하할 때, 시리아에서는 강화를 요청했지만 로마와의 협의에 실패했다. 다시 전개된 전투에서도 패한 시리아는 결국 로마에 항복하게 된다.


이후, 로마에서는 카토가 세력을 얻으며 스키피오를 몰아내게 된다. 스키피오는 별장인 리테르노 (現 나폴리 북서쪽) 에서 남은 여생을 보내다가 기원전 183년 생을 마감한다. 같은 해에 흑애 연안의 비티니아에서 한니발로 생을 마감한다.


기원전 171년, 마케도니아의 왕을 이어받은 페르세오스가 군사력을 증가시켜 동쪽의 페르가몬 왕국을 공격하기로 하자, 로마는 동맹국들과 병력을 모아 마케도니아를 공격한다. 하지만, 이전처럼 적극적인 대응이 없자 그리스 주변 국가들도 서서히 페르세오스에게 관심을 가지기 시작한다. 이에 따라, 로마는 아이밀리우스 파울루스를 집정관으로 선출하여 마케도니아로 보낸다. 아이밀리우스는 피드나 평원에서 펼쳐진 전투에서 승리하여 마케도니아를 멸망시킨다. 마케도니아의 영토는 4개로 분할되어 자치를 인정받게 된다.


제3차 포에니 전쟁


이후, 카르타고는 용병을 모아 누미디아로 쳐들어간다. 하지만, 누미디아에게 패한 카르타고는 로마에 용병부대 해체와 지휘관 처형을 약속한다. 하지만, 약속을 바로 이행하지 않는 카르타고의 태도에 격분한 로마는 기원전 149년 카르타고로 로마군을 보내게 된다. 카르타고는 무조건 항목을 제의하고 300명의 인질을 로마에 보내게 된다. 또한, 앞으로의 할일에 대한 지시를 청원하기 위해 대표 30명을 로마로 보낸다. 로마는 수도 카르타고를 파괴하고 주민들을 내륙 지방으로 이주시킬 것을 지시한다.


이 시기에, 그리스에서도 반 로마 세력이 들고 일어나게 된다. 기원전 148년, 로마는 그리스에 군단을 파견한다. 1년도 지나기 전에 반란군을 진압하고, 4개의 자치국으로 분할되어 있던 마케도니아의 왕국들은 로마의 속주로 격하된다. 한편, 카르타고에서는 로마의 지시를 수락한 지도층에 대해 격노한 민중들이 반란을 일으킨다. 스키피오의 양손자인 스키피오 아이밀리아누스 (아이밀리우스 파울루스의 친아들)는 기원전 146년 결국 카르타고를 함락시킨다. 그 이후, 카르타고 영토는 우티카에 주재하는 총독이 다스리며 호칭도 '속주 아프리카'로 바뀌었다.


후계자를 낳지 못한 페르가몬의 왕이 왕국을 로마에 맡기고 죽음에 따라, 페르가몬 왕국도 로마의 속주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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